NCD웨비나 특강-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의 기독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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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의 기독교미술
1.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하여 16세기 중반까지 서유럽 전역에서 전개된 학문·문화·예술의 새로운 경향을 르네상스(Renaissance) 라고 한다.
르네상스기의 성격을 규정할 때 빈번히 사용하는 표현은 신 중심의 중세가 인간중심의 근대로
진입한 시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여전히 신 중심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다.
교황청의 아비뇽유수(1309-77), 서방교회의 대분열(Schisma, 1378-1417)로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1/2-1226) 이후의 새로운 신학과 영성이 중세인들이 몰두하였던 종교적 관심사와 달리 신의 섭리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를 초래하였지만 르네상스인들은 여전히 종교적이었다. 그리고 인문주의자들이 추구한 고대의 부활이라는 시대정신도 기독교신앙과의 융화라는 범주 내에서 수용되었다.
이전시대와 달리 미술작품에서 인간이 부각되고 강조되는 경향을 통해 인간중심 근대사회의
단초를 이루는 맹아가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미지가 사상보다 선행한’ 전형적인
경우(허버트 리드) 라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근대 초,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중세와의 단절을 지닌 세속적인 근대로의 진입으로 과도하게 이해한 것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 막 근대를 경험한 19세기 역사학계의 한계였다.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유발한 발전경향이 심화·가속화 한 것으로 중세와의 연속성(Kontinuität)을 지닌다. (J. 하위징아, A. 하우저)
2. 14세기 이탈리아의 단테(1265-1321), 보카치오, 페트라르카(Francesca Petrarca, 1304-
74)를 위시한 인문주의자들이 시대적 과제로 여긴 고대의 부활이라는 인식은 16세기 후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74)의 ‘예술가열전’(1550/68)에서 고전고대 미술의 부활,
재생(renascita : 레나시타)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용어를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는 그의 저서 ‘프랑스역사’(Histoire de France, 1833-67)에서 16세기 알프스이북의 문화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르네상스(Renaissance, 1855)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스위스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C. Burckhardt, 1818-97)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 Ein Versuch, 1860)에서 이 용어를 재차 사용함으로 르네상스 개념의 보편화에 기여하였으며, 세계와 인간의 발견, 고대의 부활 등 우리가 지니고 있는 르네상스 상(象)을 정립하였다.
3. 중세를 넘어 새 시대를 구현하고자 한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의 동력(動力)은 16세기
종교개혁(Reformation)의 발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개혁을 통해 비로소 르네상스의 정신이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운동이 고대의 부활·재생(rebirth)을 모토로 삼아 새 시대를 추구한 반면, 종교개혁은
고대교회가 품었던 복음의 재발견을 통한 세계와 교회의 개혁(reform)을 지향하였다.
르네상스인들이 인문주의(Humanismus)를 통해 시도한 중세의 해체, 새로운 세계의 구성은
복음의 재발견에 근거한 새로운 신학적 사고가 삶의 모든 영역에 작용함으로 종교개혁에서 비로소 구현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각성한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개인의 믿음’은 중세적인 집단적 세계관을 대체하는 개인(Individuum)과 자유(Freiheit)의 개념을
유발함으로 근대의 문에 들어서게 한다.
흔히 인본주의 대 신본주의 단순도식으로 이해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실상은 각각의 문명·정신사적 기반인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에 근거해 동일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상의 발현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자유주의 역사가들의 자기 시대의 시선이 투영된 이해와 달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는 여전히 종교의 비중이 큰 시기였으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도달하고자 한 중세 이후 새 시대의 지향이라는 목표는 결국 종교개혁을 통해 달성되었다.
4. 이 강의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상관관계를 교회사·문화사적으로 고찰하고 당대의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의 신학이 회화와 조각, 건축 등 미술언어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봄으로 오늘의 개신교를 구형한 종교개혁사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미술작품들을 신학적 안목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1) 루카스 크라나흐부자, 종교개혁제단화(Reformationsaltar, 1547), 비텐베르크 시(市) 교회
2)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c.1495-98,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수도원, 밀라노
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Pietà), 1498-1499 / 1547-1553 / 1564
4) 토르가우 성채 예배당(Torgauer Schlosskapelle), 1544, 독일 토르가우
5) 로마 일 제수 교회(Il Gesù), 1568-1584 / 파사드(façade), 1573-1577
6) 초기기독교 시기의 바실리카 교회건축
7)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 1228-53), 아시시
임재훈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KMC 유럽지방 감리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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